청소년들 "정부의 소극적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생명권·환경권 침해"
청구인은 청소년 19명, 피청구인은 대한민국 국회·대통령
청소년들이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생명권 등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제기된 기후변화 관련 소송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은 13일 소속 청소년 19명이 공동으로 온실가스 감축 등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청구인 전원은 10대 청소년이며, 피청구인은 대한민국 국회와 대통령이다.
헌법소원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정부가 지금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할 경우 기후변화에 따른 ‘기후재난’을 막을 수 없다”며 “그에 따른 생명권·환경권·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기본권 침해의 피해는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청구서에서 “이 사건 청구인들은 온실가스 배출의 지속적 누적과 지구 온난화의 위험으로 인해 생명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박탈당할 ‘회복할 수 없는 위험’에 놓여있는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 청소년들”이라며 “대한민국 입법부와 행정부는 외형적으로는 기후온난화대책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적당한 수준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의 백지적 모호함과 변경과정의 무책임성, 감축 목표의 소극성으로 대한민국 차세대 청소년들의 생명권과 환경권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 원고로 참여한 김도현양(16)은 서울 광화문센터포인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몇 개월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저는 청소년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며 “매주 주말 거리에서 캠페인을 하고 결석시위를 꾸준히 열었다. 정부 관계자를 만나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등 바쁜 일상을 쪼개 기후변화 대응을 외쳤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정부에서는 뚜렷한 (변화의) 움직임이 없었다. 실질적인 변화가 절실한 시기라고 생각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청소년 활동가들로 결성된 환경운동단체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결석시위’의 한국 개최를 주도하는 등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 허울뿐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위헌
청소년들은 정부가 법적으로 구체적인 기준 없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마음대로 설정하고, 그렇게 세운 감축 목표치를 또 자의적으로 폐지하는 등 기후위기를 막는 데 실효성이 없는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생명권·환경권·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0년 제정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은 42조 1항 1호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정부가 중장기 및 단계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 어떤 법령의 형식과 기준에 따라 이를 결정해야 하는지는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이 같은 모호한 규정에 대해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법에서 ‘백지위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 75조 포괄위임 금지원칙, 환경권의 내용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 35조 환경권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사실상 ‘백지위임’ 상태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운 뒤 이를 달성하지 못한 채 자의적으로 폐지하기도 했다. 2016년 5월에는 ‘2020년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0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25조 1항을 폐지했다. 대신 ‘2030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 100분의 37까지 감축하는 것으로 한다’고 개정했다. 개정 전 조항의 계산대로라면 감축 목표가 5억4300만t이지만, 개정 후에는 목표가 5억3600만t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치는 비슷하게 유지한 것이다.
가장 최근 개정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지구 온도 상승을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1.5도)으로 억제한다’는 최소한의 기준을 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 기준은 국제사회에서 파리협정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을 통해 합의된 것이다. 정부가 2016년 국회의 비준동의를 얻어 파리협정을 비준했기 때문에 파리협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고, IPCC에서 6대 의장국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 25조 1항은 ‘2030년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17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1000분의 244까지 감축한다’고 개정됐다. 형식적으로 기술을 다르게 했지만, 계산해보면 직전 개정한 2016년과 같은 수치인 5억3600만t이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꾸준히 늘어 2017년 7억910만t을 배출했다. 이는 전 세계 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5위,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양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었는데, 3년 만에 법을 개정하면서 또 똑같은 감축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 청소년들이 부모세대에 제기하는 소송
이번 소송은 이미 해외 여러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소송이 국내에서도 시작됐다는 점,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에게 제기한 ‘세대 소송’이라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
S&L파트너스와 함께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의 윤세종 변호사는 지난 1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다른 환경문제에 비해 기후변화는 세대 간 불평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가 위험한 수준까지 안 가게 하려면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은 정해져 있고, 이를 ‘탄소예산’이라고 한다. 그 예산을 언제, 얼마큼 쓸지에 대한 ‘분배’가 필요한데, 지금 세대는 그 예산을 빠른 속도로 소진하면서 다음 세대들의 감축 기회 자체를 앗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성년인 세대들이 다 쓴 탄소예산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겪게 된다는 점에서 ‘세대 간 불평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입법·행정의 영역에만 맡겨뒀던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대해 ‘지금 이 정도의 정책이 과연 충분한지’에 대해 처음으로 헌법적 판단을 요청했다는 의미도 있다. 청구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정부는 현재보다는 진전된 온실가스 감축안을 내놓아야 한다.
변호사들은 이번 소송이 기후변화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하기 위한 ‘선언적 행위’가 아니라 “이겨야 되고, 이길 수 있는 소송”이라고 강조했다. S&L파트너스의 이병주 변호사는 “처음 사건을 맡을 땐 ‘기획소송’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준비하면서 법적으로 단단한 논리를 만들어냈다”며 “이겨야 하고, 이길 수 있는 소송”이라고 말했다.